유라시아 여행

유라시아 D+16(5월 15일) 카잔 가는 길은 너무 힘들어-26시간의 긴하루

애니(현숙) 2018. 5. 19. 05:51

* 페름의 여명

 

*예쁘기만 한 페름 호텔의 작은 식당...

 

 

*너무 맛이 없는...러시아 음식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지~날씨도 기가 막혔다! 처음으로 야외 식사~

 

 

 

 

 

*어이없이 끊긴 길 앞에서(페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안 다닌다고...)

 

 

<그의 이야기> 

또 새벽 5시 전에 잠을 깬다. 오늘 일출은 밋밋하네.

1시간 늦춰지니 아침에 더 일찍 일어나지는 것 같다. 

7시 반에 호텔의 아침식사를 먹는데 참으로 한심한 식단이다. 

오트밀, 달걀후라이, 팬케익 같은 것. 어떤 놈이 이 호텔의 아침을 맛있다고 했는지 원망스럽다. 먹는 둥 마는 둥 겨우 끝낸다.


그래도 출발은 8시 33분. 페름을 빠져나오니 도로는 여전히 왕복 4차선으로 넓다. 페름 오기 전의 어느 도시를 지날 때 처음으로 6차선 시원한 고속도로가 깔끔하게 뚫려, 도대체 이 시골에 무슨 일인가 매우 궁금해서 혹시 모스크바가 가까워져서 길이 좋아지는 것인가 했다.

그런데 그건 아니네. 길은 다시 1차선 도로로 돌아간다.

카잔까지 구글이나 맵스미는 560여km를 찍는데 도로의 이정표는 그보다 무려 150km를 더 알린다. 

나중에 이 차이는 없어지는데 도무지 영문을 모를 일이다.


어제 경찰에게 당한 이후로 실선에서의 추월을 극히 자제한다. 오늘 가야 할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덕분도 있다.

기름을 넣고 조금 지나니 시간이 또 1시간 늦춰진다. 주 이름은 나중에 알아봐야지.

산골 어느 조용하고 먼지없는 공터에서 처음으로 탁자를 펴고 소풍나온 사람들처럼 느긋한 점심도 즐겨본다. 그래봐야 반찬이라곤 늘 먹는 김치, 멸치볶음, 삼엽국화 장아찌에 특별히 양배추이지만.


구글과 맵스미가 공통적으로 알려주는 길을 따라 열심히 간다.

타타르 공화국에 들어오니 시간이 또 1시간 늦어진다.

갑자기 시간이 막 늘어나서 오늘은 26시간을 살게 생겼네. 여유가 있어서 마치 횡재한 느낌이다.

카잔 크렘린의 하얀 성벽이 노을에 물드는 멋진 광경도 즐길 수 있겠다는 기대에 가슴이 부푼다. 잘 가는데 갑자기 20km의 비포장 길이 나온다. 길이 너무 험해서 조심조심 40여 분을 가니 강을 건너야 하는 곳이 나온다. 

구글은 분명히 페리가 있다고 하는데, 마침 뭔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배가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조그만 보트를 타고 건너오네. 사공에게 물어보니 페리는 없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기가 막히네. 구글과 맵스미를 철썩같이 믿은 게 참사를 부른 첫 번째 실수. 카잔을 150km 앞두고 이런 참사가...


다시 돌아가 제대로 된 길을 찾기로 하니 돌아가는 마음이 바빠진다. 

올 때보다는 길이 좋은 것 같아 속도를 좀 낸 것이 두 번째 실수. 아마 어디선가에서 부딪힌 돌이 기름탱크를 박살냈을 것.

가다보니 마을이 나와서 잠시 길을 찾기 위한 성급한 후진이 세 번째 실수. 차가 길옆 진창에 빠져버렸다.

이런 일이 생기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 너댓 가구밖에 없어보이는 동네의 사람들이 거의 모두 나와 차를 빼기 위해 애를 써준다. 

그 와중에 이상한 기름 냄새가 나서 살펴보니 기름탱크에서 기름이 줄줄 새고 있는 걸 발견한다.

다른 차에 연결해 차를 빼다가 실패해서 시동을 걸어둔 채 문을 닫은 게 마지막 실수. 

이 놈의 차가 왜 키가 꽂혀 있는데도 문이 잠겨버리는 거냐?


참사 종합세트네. 차는 빠져 있으면서 차문이 잠겨 바퀴는 계속 돌아가고, 현숙은 겨우 가위 하나만 들고 나와 어찌 해보려고 애만 쓰다 포기하곤 낙담해서 앉아 있고, 도와주려고 열심히 애쓰는 동네 사람들과는 말도 통하지 않고.

어찌어찌 또 구글번역기를 돌려 구난차를 불러달래니 1시간 쯤 후에 기술자가 와서 차문을 연다. 

기름이 다 새버려서 다시 동네 사람에게 기름 20리터를 산다. 약 3시간 만에 탈출에 성공한 셈이다. 지난 번에도 경험한 바인데 러시아 사람들은 정말로 순박하고 친절하다. 참으로 고맙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차가 진창에 빠지고 문이 잠긴 건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일 차가 진창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기름통이 찍어져서 기름이 새는 줄도 모르고 가다가 막막한 비포장길 한가운데에서 누군가 도와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한없이 기다리는, 더욱 질나쁜 참사가 발생했을 것이다. 또 차문이 잠기지 않았다면 진창에서 차가 빠져나와도 그 기술자 없이 어떻게 정비공장을 찾아 기름탱크를 수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참 끔찍하다. 궁즉통이라 했다. 


기술자를 따라 정비공장이 있는 키르메즈까지 40km를 죽어라고 달리기 시작한다. 얼마 못 가서 20리터 기름이 다 새버려 처음에 보고는 이런 곳에도 주유소가 있네 하며 신통해하던 그 주유소에서 기름을 천 루블(@37, 27리터) 어치 넣고 정비공장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고칠 수 없다고 하는 것 같아 낙심천만이었는데 고칠 수 있다네. 차를 들어올려서 바닥을 보니 기름탱크 앞 부분이 찢어졌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중요한 기름탱크가 찢어지게 만들면 어떻게 하냐 이 나쁜 기아차 놈아. 약 2시간 정도 걸려 드디어 수리가 끝난다.


기다리는 동안 카잔 숙소를 기한 14분 남기고 취소한다. 그나마 다행인가? 

키르메즈 정비공장 주변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본다. 예쁘게 창문을 장식한 새 집이 많다.

오면서 줄창 보는 것인데 러시아에서는 창문과 담장을 예쁘게 장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모양이다. 집집마다 똑같은 장식이 없이 다 다르다.

돌아오니 수리가 거의 끝나간다. 7시 30분에 주유소에 가서 기름 20리터(@43, 860루블)를 넣고 공장으로 돌아온다. 

우리가 길을 몰라 하니까 기술자가 영어를 하는 아줌마를 불러 길을 알려주게 하네. 참으로 친절한 사람들.

드디어 수리가 끝났다. 수리비는 780루블밖에 받지 않는다. 하긴 떼우는 무언가를 바르고 기다린 것 외에는 없으니 많이 받을 수도 없겠다.

8시 도와준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알려준 대로 북쪽 길로 떠난다. 시간을 빨리 늦춰서인지 해가 벌써 지면서 노을이 기막히다. 사고가 나면 주변 풍경이 늘 아름다운 건 왠 까닭일까?


긴장이 풀린 데다 어두운 밤길이라 운전이 몹시 힘든데 숙소는 보이지 않는다.

갈림길 부근에서 다시 기름을 넣고 맵스미가 찾은 동네 숙소를 동네 가게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겨우 찾아가니 이번에는 방이 없다네. 

마지막 참사라고 칠까?


카잔가는 길로 접어들어 최악의 경우에는 차박이라도 한다며 찾아간 가스티니차. 방도 있고 밥도 있다. 너무너무 고맙다.

10시 반에 맥주(93)를 곁들여 맛없는 저녁식사(170)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온다.

짐을 가지러 차에 가는데 트럭 기사아이들이 놀다가 말을 걸면서 동전을 바꿔달라네. 마침 차에 있던 100원 동전 2개를 그냥 줬더니 무척 좋아하네. 기념으로 사진을 찍는다.

10시 55분. 참으로 어이없고 황당하고 기막힌, 26시간의 긴 하루가 끝난다.

 

<키르메즈 정비공장 주변 동네- 예쁘게 창문을 장식한 새 집이 많다. 차를 수리 맡기고 속은 터지지만 웃고는 있는데...>

 

 

 

 

 

 

 

 

 

 

 

 

 

 

 

 

 

 

 

 

 

 

 

 

*연료탱크를 잘 수리해준 엔지니어 오빠와 영어 선생님을 하셨다는 여자분과 함께~(정신이 없어서 이름은 못 외움...)

 

*이날 저녁 노을은 왜 이리 슬프도록 아름다운가....

 

 

 

* 트럭기사 청년과 한 컷 -한국에서 차를 몰고 왔다니 "아 유 크레이지?" 했다지 아마? 엄청 신통해했다고...ㅎ

 

 <나의 이야기>

5월 15일. 9시 30분 출발.

일이 처음에는 너무 잘 풀렸다...

그러더니...

차가 진창에 빠져 기름통이 새더니 시동도 안걸린다.

길도 안좋은데...

어찌해야하나...

빨리 좋은 생각을 해내야하는데...

레카도 없는 동네인데.

다행히 해가 길어서ㅡ오늘 2시간이나 늘어났다.ㅡ

카잔 가는길이 어렵다하더니 이럴 줄은 몰랐다.

차가 망가졌으니 어떻게 이동을 하나...

세상에 쉬운 게 없네..

 

연료통이 깨져서 기름이 줄줄 샌다.

교체는 당연히 어려울 줄 알았고,

오늘 안에 수리가 어려울 줄 알았는데

다행히 뭔가를 발라서 1시간 안에 수리된다고 한다.

 

공짜 없는 세상...

그래도 러시아인들이 다들 친절해서 고맙다.

친절하다는 말을 들어서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줄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덜 걱정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도와줄려고 애써주니 정말 고마웠다.

담배라도 한 갑씩 나눠주려고 했는데, 차문이 잠겨있는 바람에 아무것도 못줘서 미안했다.

견인차는 없어서 트랙터가 차를 빼줬는데 그 사람에게도 사례도 못했다.

경유를 20리터 공급해줘서 기름값만 1000루블주고 말았다.

말이 안 통해 그냥 <스빠시바>만 남발했다.

가던 사람들마다 차 세우고 아는 척해주고 전화해주고 같이 기다려주고 위로해주신 러시아 사람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 동네 수리집에 갔더니 연료통에 뭔가를 발라서 수리를 한다.

교체할 필요가 없어서 다행.

대도시에 가서 점검받아보라고 했단다.

원래 모스크바 가서 엔진오일도 갈고 전반적인 체크를 하려했는데...

 

고맙게도 자동차엔지니어가 우리가 카잔을 간다니 영어 할 줄 아는 여자분을 불러줘서 덕택에 길을 찾아서 카잔쪽으로 떠날 수 있었다.

 

근데 그놈의 인터넷이 또 말썽.

구글이 말을 하지않아 임시방편으로 맵스미로 길을 찾아갔다.

카잔가는 길은 맵스미도 사고를 쳤지만 그래도 비상시에는 역할을 해서 고맙게 잘 쓰고 있다.

 

이상하게 이곳에서는 해가 금방 져서ㅡ그전날은 9시반에도 환하던데- 8시 넘으니까 어두워진다.

자동차 수리를 마치고 영어하는 여자분이 100km는 가야 숙박할 수 있을거라더니 정말 한 100킬로까지는 쓸만한 마을이 안나왔다.

맵스미가 말한 여관 중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갔더니, 오 마이갓!

그 밤ㅡ9시 좀 넘었나?ㅡ에 방이 없단다.

할 수 없이 카잔 가는 길로 잡아 12km 정도 가니 주유소 여관이 나왔다.

얼마나 감사한지...

피곤해서 억지로 식당에서 밥 한 줄 먹고 씻지도 못하고 쓰러져잤다.

긴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났다...